제목 : 벽제에 눈이 내리면

겨우 17살이었다. 중학교 졸업식이 끝나고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중학생도 아니지만 아직 고등학생도 아니었던 그 애매한 날. 그날은 아침부터 집안에 큰 소리가 들렸다. 계속해서 운동을 하고 싶다는 동생의 말을 부모님은 철저히 묵살하였고 동생은 끝까지 반항하고 대들었지만 우리들에게는 경제력이란 것이 없으므로 다른 방법은 없었다. 부모님은 동생의 운동에 대한 지원 자체를 끊으시는 것으로 얘기를 마무리 하셨고 아버지는 직장으로 어머니는 기도원으로 가신 후였다. 계속해서 분을 삭히지 못하는 동생을 보며 쟤는 고작 나랑 두 살 차이일 뿐인데 저렇게 생각이 짧을까 하며 한심스러워 하던 나는 이내 방으로 들어가 버렸고 본인의 방도 없었던 동생은 안방으로 들어가버렸을 것이다.

안방에는 어머니가 두고가신 돈이 있었고 가스배달원이 벨을 누르고 가스를 교체했다고 하였기에 방문을 열고 들어가려고 할 때 방문은 잠겨 있었다. 동생이 그 안에서 무엇을 하는지 몰랐지만 나도 기분이 좋지 않았기에 방문을 아무리 쾅쾅 두드려도 그는 문을 열지 않았다. 화가 나 문을 강제로 열고 들어갔을 때 그곳의 모습은 지금도 떠올리기가 싫지만 여전히 너무나 선명한 이미지이다. 그렇게까지 비관적인 일이었을까, 동생은 그곳에서 아버지의 넥타이를 이용하여 자신의 생명을 매듭지어 버렸다. 급하게 도와 달라 외치고 119에 신고를 하고 마침 집 앞을 순찰중이던 경찰차에 동생을 태우고 가까운 병원으로 이송하고 응급실에서 동생에게 심폐소생술을 실시하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고 나왔다. 교회를 거쳐 기도원으로 어머니를 급히 병원으로 오도록 연락을 하고 지푸라기를 부여잡는 마음으로 기도를 해보았으나 동생은 깨어나지 않았다. 심폐소생술을 실시했던 병원에는 장례식장이 없어 우리는 동생의 주검을 장례식장이 있는 구로동의 병원으로 옮기고 사람들에게 연락을 하였다. 친척들이 도착하고 세 시간 정도가 지난 후에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아버지는 만취상태로 도착하셨고 우리는 삼일간의 장례를 치뤘다.

사흘이 지나고 벽제의 화장터에서 모두가 오열하고 쓰러질 때 나는 아직도 이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아 여전히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있었다. 2월의 마지막 날 그날 벽제의 날씨를 잊지 못한다. 겨울이 끝나가고 있는 줄 알았던 그 날 벽제의 화장터에는 펑펑 함박눈이 내렸다.

참 쉬운 일이었다. 삶을 끝내는 것도 형제가 하나 없어지는 것도 다 그렇게 별 일 아닌 듯 끝나버린 일. 아직도 동생을 뿌린 곳을 알지 못한다. 먼저 간 자식은 부모 모르게 뿌리는 것이라면서 동생의 유골을 가지고 가서 뿌려버린 분들조차 30년의 세월을 지나 세상에 남아있지 않다. 돌아가시기 전에 어디에다가 뿌렸는지 물어볼 걸 후회가 된다. 고등학교 입학 직전의 그 일은 나의 고등학교 3년을 엉망진창으로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3일 동안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던 나를 탓하며 방황하는 사람은 나였다. 3년 동안 100일이 넘는 결석을 하고 성적은 우리반 52명 중 49등으로 마감하였다. 심지어 결석이 많아 졸업이 불가능한 것을 나를 불쌍하게 생각하는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병결로 처리하고 간신히 졸업을 할 수 있었다. 고등학생인 주제에 매일 술을 마시고 취해 비틀거리는 나를 보면서 “오죽 힘들면 애가 저러겠냐” 동정하고 가엽게 여기는 동네사람들에게 행패를 부리곤 하였다. 나의 고등학교 3년은 철저하게 불량했고 방황했다. 가끔은 가슴이 답답하여 교복을 입은 채 등교 대신 월미도를 향하기도 하였고 가끔은 학교 대신 놀이공원을 가기도 하였다. 스스로를 망가뜨리고 싶었다. 어떤 날은 화가 나서 내 방의 유리창을 다 깨기도 하였고, 어떤 날은 길바닥에 있는 정보지 배포함을 부수기도 하였다.

무기력했기에 무기력하게 보이지 않으려고 털을 부풀리고 발톱을 드러냈던 나의 십대. 30년 전의 2월 어느 날. 그 날로 돌아간다면 부모님과 언성 높이던 동생을 편들어 주지 않을까? 낙담하던 동생을 위로해 주지 않을까? 아니 그저 동생과 함께 있어주지 않을까? 그 마저도 안되면 눈물 한 방울은 흘려주지 않을까? 아직도 벽제에 내리던 눈이 선명하게 생각이 난다.

<aside> 🐝 뭉클’s comment 첫 이달책 백일장에 참여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어느 날 퇴근 후 들어가 앉은 파주의 카페에서 뭉친님들의 글을 하나, 하나, 읽어보았는데요. 『사랑의 꿈』이 어린 소녀가 중심 인물로 나오는 소설집인 덕분일까요? 백일장에 참여해주신 분들도 유독 ‘과거(어린 시절)의 기억’을 일깨우는 글을 작성해주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중 빈츠 님의 글을 읽고서는, 마치 저도 글 속의 벽제에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가만히 앉아있는 기분이 들었어요. 몇 번이고 다시 읽으며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소중한 글을 내어주신 빈츠 님에게도, 참여해주신 다른 뭉친님들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우리 앞으로도 많이 읽고 많이 쓰는 시간 가져요!

</asi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