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곳에 모여 선 사람들은 기쁨과 축하와 아쉬움을 나누며 이날의 특별한 경험과 문학에 대한 끝나지 않는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문학을 쓰고 옮기고 만들고 읽고 사랑하는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한데 모여 자아내는 그 활기가 국경과 언어를 건너 문학을 축제로 만드는 힘이 아닐까 싶었습니다.”(2023.06.13)
지난달, 천명관 작가의 『고래』가 최종 후보에 오르면서 많은 관심을 모았던 인터내셔널 부커상 시상식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노벨문학상, 공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영국의 부커상은 ‘영어로 쓰인 가장 뛰어난 소설’에 주어지는 부커상과 ‘영어로 번역된 가장 뛰어난 소설’에 주어지는 인터내셔널 부커상 두 부문으로 운영되는 상입니다. 천명관 작가님과 김지영 번역가 두 분은 일찍부터 런던에 도착해 최종 후보작 낭독회와 한국문화원 북토크, 서점 사인 등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계셨습니다. 시상식 전날에도 두 분은 런던의 유명 서점인 돈트북스와 워터스톤스 등에 들러 서명 작업을 했고, 저녁에는 『고래』의 영국 출판사인 유로파 에디션스에서 열린 파티에 참석했습니다. 한적한 주택가 골목에 자리잡은 작은 출판사 사무실에 앉을 틈도 없이 들어찬 사람들은 먼 곳에서 온 작가와 번역가를 환대하며 『고래』가 최종 후보에 선정된 기쁨과 시상식에 대한 기대를 나누느라 밤이 되도록 자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저녁. 올해의 인터내셔널 부커상 시상식은 런던 금융가 빌딩 꼭대기에 위치한 스카이가든에서 열렸습니다. 런던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열리는 문학상 시상식의 풍경은 화려하고도 낯설었습니다. 최종 후보에 오른 작가와 번역가들이 한쪽에 모여 사진 촬영을 하고, 언론사들과의 사전 인터뷰가 여기저기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이어지는 칵테일 파티와 만찬 사이사이 최종 후보작들의 소개와 인터뷰, 작품 낭독을 담은 영상이 상영되면서 분위기는 점점 무르익어갔고, 이윽고 수상자를 발표할 시간이 되었을 때 현장의 열기와 긴장은 한껏 달아올라 있었습니다. 일찍이 천명관 작가님은 수상은 그저 운에 따른 일이고, 세월이 흐르고 보면 실패도 좋은 일이 될 수 있고 성공도 나쁜 일이 될 수 있더라며 그야말로 인간만사 새옹지마 같은 소감을 피력했지만, 그 자리에 참석한 모든 관계자들은 당연하게도 수상에 대한 기대를 감출 마음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것은 부커상의 법칙이었습니다.)
마침내 올해 심사위원장 레일라 슬리마니의 심사 소감 끝에 수상자가 발표되었고, 모두가 아는 것처럼 올해 인터내셔널 부커상은 불가리아의 작가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의 『타임 셸터』에 돌아갔습니다. 『고래』가 상을 받으면 손목에 한글로 ‘고래’라고 타투를 새기겠다던 유로파 에디션스의 마케팅 담당자 다니엘라 씨의 공약은 이루어질 수 없게 되었지만, 파티는 그뒤로도 오래 계속되었습니다. 곳곳에 모여 선 사람들은 기쁨과 축하와 아쉬움을 나누며 이날의 특별한 경험과 문학에 대한 끝나지 않는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문학을 쓰고 옮기고 만들고 읽고 사랑하는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한데 모여 자아내는 그 활기가 국경과 언어를 건너 문학을 축제로 만드는 힘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고래』 낭독 영상 보기
그리고 바다를 보았다. 갑자기 세상이 모두 끝나고 눈앞엔 아득한 고요가 펼쳐져 있었다. 곧 울음이 쏟아질 것처럼 가슴이 울렁거렸다. 그녀는 옆에 있는 바위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연해의 섬들이 마치 물위에 떠 있는 것처럼 멀리서 아른거렸고 그녀가 앉아 있는 바위엔 끊임없이 파도가 부딪쳐 포말이 일었다. 무심하게 고깃배 위를 오가며 끼룩대던 갈매기들이 어느샌가 쏜살같이 해수면으로 날아들어 물고기를 낚아올리기도 했다. 콩닥거리던 가슴이 어느 정도 잦아들 무렵 그녀는 갑자기 눈을 크게 뜨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그것은 자신이 살던 집보다 족히 서너 배는 됨직한 거대한 물고기였다. 물고기는 바다 한복판에서 불쑥 솟아올라 등에서 힘차게 물을 뿜어올렸다. (……) 금복은 바위 위에 주저앉아 다시 그 큰 물고기가 나타나기를 기다렸지만 끝내 물고기는 나타나지 않고, 바다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끝없이 잔잔하기만 했다. 그녀는 언젠가 다시 고향에 돌아간다면 사람들에게 자신의 눈으로 직접 목격한, 믿을 수 없을 만큼 큰 물고기와 마을의 저수지보다 수십 배 더 넓고 거대한 바다에 대해 얘기를 들려줘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소망을 이루기란 어려운 법, 그녀의 인생에서 그런 날은 영영 오지 않았다.
_『고래』 문학동네 30주년 기념 특별판, 61~62쪽
글 I 편집자 L
천명관 작가가 단편 「프랭크와 나」로 문학동네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하던 해에 문학동네에서 편집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