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마음을 다해 쓴 이야기인 만큼 독자분들도 이 소설을 반가이 맞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나약한 존재라 다른 이에게 쉽게 상처를 입히고,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지만 저는 우리에게 그것이 우리를 결정짓지 않게 할 수 있는 힘도 있다고 믿고 싶어요.” (2023.05.30)
작가님 잘 지내셨나요? 3년만의 신작, 첫 장편소설 『눈부신 안부』를 집필하신 소감이 궁금합니다.
최종 교정지를 보내고 나서는 계속 떨리는 마음이에요. 교정지를 가지고 있을 때는 뭔가 고치면서 긴장하는 마음을 달랬는데, 이제는 제가 고칠 수 있는 것이 더이상 없고 독자님들의 반응을 지켜보기만 해야 하니까요. 책이 나온 지 여러 날이 지났는데도 아직 설레고 긴장되는 마음은 여전합니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 시간을 조금 더 들였으면 더 나아졌을 부분들은 없나 자문하게 되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보다는 출간의 기쁨을 조금 더 많이 누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가 제 인생의 첫 책인 첫 소설집 『폴링 인 폴』을 출간할 때는 충분히 기쁨을 누리지 못했던 게 후회가 되곤 했거든요. 온 마음을 다해 썼고, 많은 분들이 제 글을 한 권의 책으로 만들기 위해 마음을 보태주신 만큼 첫 장편을 출간한 이 상황을 온전히 기쁨과 보람으로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이번 작품 속 주인공은 유년시절을 독일에서 보내요. 파독간호사인 이모도 등장하고요. 이런 소재를 떠올리신 이유가 있으셨을까요?
작가의 말에 살짝 쓰긴 했지만 제가 오랫동안 장편소설을 쓰지 않으니 언젠가부터 주변에서 장편에 써보라며 이런저런 소재들을 저에게 이야기해주곤 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한 친구로부터 ‘파독간호사 전시회’에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전시를 통해서 지금까지 갖고 있던 파독간호사들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고 했어요. 그때까지는 저 역시 파독간호사라고 하면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독일로 떠난 여성들을 떠올리곤 했는데 그 친구가 들려주는 전시의 이야기를 듣던 중 제 머릿속엔 갑자기 각자의 꿈을 좇아 모험을 떠나기 위해 독일로 떠나는 앳된 70년대의 여성들이 그려졌어요. 그 여성 인물들에 대해서 쓰고 싶다는 마음에 설레서 집으로 돌아왔던 기억이 납니다. 처음 구상했던 소설과는 조금 달라지긴 했지만, 그래도 오행자와 최말숙, 임선자라는 인물들을 만들어내고 그들과 오랫동안 함께할 수 있어서 무척 즐거웠습니다.
지금 북클럽문학동네는 이달책을 통해 『눈부신 안부』를 읽고 있습니다. 리딩가이드 속 5번 질문을 조금 변형해 작가님께 건네고 싶어요. "소설을 마친 후, 안부를 묻고 싶은 사람이 생겼나요?"
질문을 받고 나니 저와 처음 편지를 줄기차게 주고받았던 친구 생각이 나네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 드문드문 계속 연락을 주고받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연락이 끊겼어요. 더이상 친구가 답장을 하지 않더라고요. 심장이 좋지 않아 학교를 자주 쉬기도 했던 친구였던 터라, 무척 걱정이 되었어요. 무슨 실수를 해서 친구의 기분을 상하게 한 건 아닐까 오랫동안 걱정을 하기도 했고요. 그럴 일은 없겠지만 친구가 제 소설을 읽는다면 연락을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면서 이 소설 속에 친구의 이름을 집어넣기도 했습니다. 제게 연락을 해주진 않더라도, 우리가 함께 편지를 주고받던 그 시절을 제가 여전히 기억하고 있고, 애틋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친구가 소설을 읽으며 느껴주었으면 해요.
작가님의 유년을 대표하는 물건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제 유년과 청소년기를 대표하는 물건은 『눈부신 안부』에도 중요한 소재로 등장하는 편지예요. 유년 시절부터 청소년기까지 전학과 이사를 무척 자주 한 탓에 친구들과 헤어질 일이 아주 많았어요. 하지만 저에게는 편지가 있어서 자칫 몹시 외로울 뻔했던 그 시절을 잘 통과해낼 수 있었습니다. 지금 보면 결국 제 곁에 남은 친구들은 대부분 편지 쓰는 것을 좋아하던 저와 비슷한 아이들이에요. 다른 세상에 대해 호기심이 많고, 스스로에게 생겨난 일들을 글로 쓰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들. 같이 학교에 다닐 때는 그다지 친하지 않았고 각자의 생일파티에 서로를 초대하거나, 등하교를 함께 한 적조차 없었던 친구들이었지만 그런 아이들은 제가 주기적으로 보내는 편지들에 꾸준히 답장을 주었고, 며칠이 지나면 또 제게 먼저 편지를 보내오곤 했지요. 그렇게 수없이 많은 편지들을 쓰면서 성장한 저의 경험이 저를 소설가로 만들고 첫 장편소설을 쓰게 한 걸 보면, 인생은 참 신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