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유년

일요일이면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영화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켜놓고 큰 냄비에 라면을 끓여 다같이 나눠먹었다. 주말이면 매일 잠냄새를 풍기던 아빠는 우리동네에 맥도날드가 생긴 주말에 일찍 일어나 맥모닝을 사왔다. “일어나봐” 하는 소리에 눈을 못 뜨고 나갔다가 맥도날드 포장지에 눈을 번쩍 뜨고 맛있는 냄새에 소리를 지르고 박수를 쳤었다. 엄마도 깜짝 놀란 건 마찬가지였다. 깔끔하게 머리를 빗어넘기고, 좋은 스킨 향을 풍기던 아빠. 맥모닝을 뜯어주며 우리에게 웃어주던 아빠. 처음 먹은 맥모닝. 가끔 컨디션이 좋아 일찍 일어나 드라이브스루로 가면 그 날의 아빠가 떠오른다. 어느 밤, 꼬불거리는 길에도 아빠 차만 타면 무서울 게 없던 어린 시절. 뒷차의 전조등이 도깨비가 따라오는 것 같아 “도깨비가 쫓아오고 있어!” 하면 핸들을 조금씩 움직여 차가 비틀거리는 흉내를 내주던 아빠. 얼른 고개를 숙이라던 엄마. 차가 떠나가라 동요를 부르고 가요를 부르는 우리에게 한번도 조용히 하라고 하지 않던 부모님. 졸음 사이로 두런두런 들려오는,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를 나누던 우리 엄마아빠. 어두울 때 운전을 하면 그때의 우리 목소리가 생각나 혼잣말로 “도깨비가 쫓아오고 있어!” 해보지만 대꾸해줄 사람은 없다.

공주를 꿈꾸던 어린 시절, 와인잔에 물을 따라주는 패밀리 레스토랑이 너무 좋았다. 새끼손가락을 들고 물을 마시고, 생선까스를 직접 썰어 먹겠다고 선언하던 나. 날 따라한다고 새끼 손가락을 들어 물을 마시던 아빠, 동생에게 돈까스를 썰어주던 엄마. 자주 갔었는데 이름이 도무지 생각이 안 난다. 이젠 없어져서 찾을 수 없는 곳.. 나는 예쁜 잔에 물을 마셔도 더 이상 새끼손가락을 들지 않는다.

플스 게임에 빠졌던 엄마와 아빠. 이른 아침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문을 열고 나가면 두 사람이 밤새 게임을 하고 있었다. 점프를 하다가 계속 죽는 부분에서는 “네가 점프의 왕이잖아~” 하며 나에게 게임기를 건네주던 친구같은 사람들. 의기양양하게 어깨를 들썩이던 나와 환호하던 엄마. 엄마아빠가 사모은 게임은 하나도 버리지 않고 내 책장에 있고, 어릴 때 하던 게임의 후속작은 내 돈으로 사서 최신형 게임기로 즐긴다. 게임은 당연히 재밌다. 근데.. 그때 다 같이 앉아 게임 구경을 하는 것도 재밌었는데.. 아빠가 하는 거 응원하는 것도, 엄마가 퍼즐을 푸느라 머리를 쓰는 것도, 동생이 다 망치는 것도 재밌었는데. 엄마, 아빠. 나 다시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 젊은 시절의 엄마도, 아빠도 너무 다시 만나고 싶어. 마음껏 어리광 부려도 됐던, 세상에 무서울 게 없었던 그때가 너무 그리워. 기억은 생생한데 어째서 다시 돌아갈 수 없는걸까? 엄마. 아빠. 그 사랑을 당연하게 생각해서 미안해. 너무나 사랑해. 내가 주는 사랑보다 받는 사랑이 언제나 더 크지만, 그 사랑을 이제와 다 갚을 수 없지만 온 마음을 다해서 사랑해. 보고싶어.

_뭉친 윤제이

<aside> 🐝 뭉클’s comment 따뜻하고 귀여운 가족의 이야기, 왠지 뭉클해집니다. 돌아갈 수 없어서 더욱 애틋한 그때를 아름답게 그려주신 윤제이 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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