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이웃

고층아파트 엘리베이터를 가운데 두고 맞은 편 집에는 노부부가 살고 계신다. 아침 일찍부터 동네 근처에 산다는 딸과 아들 부부가 차례로 손자와 손녀를 맡기며 떠들석하게 인사하는 소리가 현관너머 복도를 울린다. 딸이 등교하러 나가면 마침 앞 집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아이들을 앞세우고 어린이집 가방을 어깨에 걸치고 따라나오신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내내 부끄러워하는 아이들더러 우리 모녀에게 인사를 하라고 종용하셔서 아이들의 인사를 받을 때까지 집으로 도로 들어가지 못한채 배웅하는 일이 잦다. 어린이 집이 끝날 시간에 손주를 데리러 오려 나오신 할아버지와 딸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탄 어느 오후의 일이다. 마침 딸은 학원 영단어 테스트를 본다며 문제를 내달라고 하고 있어서 나는 딸의 단어장을 펼쳐서 뜻을 물어보고 있었다. 항상 조용한 편으로 가끔씩 존댓말로 인사를 건내오시던 할아버지가 불쑥 우리가 잘 몰라 거듭 버벅이고 있던 영단어를 유려한 발음으로 발성하셨다. 깜짝 놀라 말을 멈추자니, 그 단어의 뜻과 쓰임을 예시문까지 들어가며 설명하셨다. 그리고는 당신께서 유럽연합 EU에서 20여년 근무하셨었다며 효과적인 영어공부의 방법, 그리고 은퇴하신 지금도 여전히 영어를 잊지 않으려고 공부를 하고 있노라 하셨다. 그날 이후로 가만히 보니 과연 세발자전거에 앉아 뒤를 밀어주며 할아버지는 손주들에게 영어로 말씀하고 계셨다. 왕년에 국제기구에서 근무하고 자식을 전부 해외에서 장성하도록 키워냈지만 이제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업무가 손주들을 어린이집 등하원을 시키는 일인 평범한 노년의 삶을 살고 계시는 이웃의 노부부. 3000세대가 사는 대단지 아파트 속에서 문득 아무개, A, 김씨.... 존재감없이 지나치는 이웃, 경비원, 배달원 그 모든 사람에게도 그 사람의 일생만큼의 깊은 틈이, 들여다보아도 다 알 수 없는 심해처럼 까마득한 틈이 존재하리라.

_뭉친 she**

키워드: 이별, 계절

원래는 여름의 끝을

불어오는 가을 내음이

미치도록 기쁜 적이 있었다

울긋불긋 옷을 입은 나무들이

강아지의 신나는 발걸음이

덥고 꿉꿉했던 여름날을 씻겨 주었다

이제는 여름의 끝을

불어오는 가을 바람이